*이 기록은 공간사일삼의 십 주년 기획 «LATENCY»(2019)의 프로젝트 중, 세미나 프로그램 ‹LATENCY: Streaming’2010s’› 참여시 작성한 강의록을 수정한 것입니다. 갤러리에 있는 25장의 사진은 강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피아☆방과후의 운영자인 이수경과 강정석이 사진첩에서 간추린 2010년대 사진입니다. 각각의 사진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달지 않으려 합니다.
(그림: 이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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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방과후의 운영자인 이수경과 강정석입니다. 저희는 각각 2010년, 2011년에 미대 학부 과정을 마쳤습니다. 저희 둘에게 2010년대는 교육 과정에서 나와 사회를 대면한 시간입니다. 2010년 서울 동대문구에 방을 구해 사회로 나와 보니, 모든 게 막연했던 기억이 납니다. 열심히 배워 대학을 졸업했지만 미술가로 산다는 게 뭔지 전혀 몰랐습니다. 초기엔 각자 좁은 시야로 두리번거리며 출발했습니다. 이런저런 시간을 거쳐 점차 넓고 깊게 보려 노력했고, 시간은 금방 지나갔습니다. 저희가 2010년대에 배운, 작은 무언가를 독자에게 전달하려 합니다. 막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직접 경험하거나 본 이야기를 하는 셈이니, 좁고 편협한 이야기입니다. 감안해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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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강의를 위해, 먼저 저희는 사진 폴더를 열고 솔직하게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때그때 어떤 것을 보았고, 배웠는지. 어떤 식으로 다양한 미술 현장에 로그인했었는지. 주변에 누가 있었고 이제 없는지. 돌아보니, 미술 행위에는 로그인과 같은 과정이 꼭 발생합니다. 일반적으로 로그인은 컴퓨터 시스템에 접속하는 보안 절차를 말합니다. 로그인 과정은 일상적으로 반복되기 때문에 우리에게 촉각적 감각으로 남고, 이런 감각과 유사한 순간을 모니터 바깥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공항 면세점에 들어가기 위한 보안 절차가 있습니다. 보안 절차를 통해 로그인은 권한을 조정하고, 항상 분리와 분배를 설정합니다. 평소 우리는 앱을 열어 개인이나 익명으로 로그인합니다. 개인이란 무엇인지, 익명이란 무엇인지는 로그인이란 절차를 마치는 표면에서 나눠집니다. 로그인은 ‘순간’이란 단어가 어울릴 만큼 짧은 과정이지만, 이 ‘순간’은 향후의 접속 내내 그림자를 형성합니다. 한번 검색대를 통과해 면세점으로 진입했다면 이후 유사한 절차를 거쳐 로그아웃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로 협업을 통한 콜렉티브로 미술계에 진입하는 상황을 들어보겠습니다. 콜렉티브는 개인 미술가와 비교할 때 다양한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여러 사람이 일하며 생기는 생산력 덕입니다. 하지만 전시의 예산에서 작가 초청에 따른 비용을 나눌 때엔, 콜렉티브 안에 인원이 맞추어 비용을 n배로 제공할 수는 없습니다. 이 경우엔 개인으로 로그인할 때보단 덜 유연해질 수도 있습니다. 다양한 제약이 로그인 순간에 이미 발생합니다. 그러다 보니 로그인을 통해 시작과 끝이 한 번에 정해지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순간의 선택이 결과를 좌우한다’ 같은 말로 들리시겠지만, 저희가 보려는 건 ‘선택’이라는 순간에 어떤 ‘절차’가 있는지입니다. 따라서 ‘로그인’이라는 단어로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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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예술과 지역과 운동”을 키워드로 공동의 이론과 실천을 모색하던 집단 돌곶이 포럼은 잡지 얼룩진 제4호를 발간했습니다. 4호의 특집 주제는 ‘비정규직’입니다. 한예종 청소노동자 노동조합 출범 과정에 관한 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신축 공사현장의 화재 사고를 다룬 글, 대학 실기 조교의 현실을 요약한 글 등 다양한 내용이 실렸습니다. 강정석은 돌곶이 포럼 멤버는 아니었지만, UQ란 필명으로 글을 실었습니다. 내용은 부당한 대우를 받은 미술 어시스턴트 B여사의 인터뷰 녹취입니다. 미술 어시스턴트가 받는 부당한 대우 이야기는 비슷한 나이의 동료 사이에선 흔한 대화 소재였지만, 책에 실리는 건 흔하지 않았습니다. 더불어 B여사를 고용했던 작가는 대학 시절 강사 선생님이었기 때문에, 강은 인터뷰를 진행한다는 사실만으로 업계에서 튕겨나갈 것 같은 불안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차라리 튕겨나가고 싶다 느낀 순간도 있었기에 녹취록은 만들어졌습니다.
B여사는 미대를 졸업한 후, 평소 존경하던 학교 강사이자 유명 작가인 L의 어시스턴트로 일했으나 정당한 임금을 받지 못했습니다. 애초에 L이 제시한 초기 금액도 최저임금에 한참 못 미치는 비용이었고, 계약서도 없었으니 일이 틀어지기로 예정되어 있던 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비인격적인 대우였습니다. 다툼이 생기고, B여사는 어시스턴트 일을 그만두었습니다(이미 출판된 내용이니, 여기서 상세히 다루진 않겠습니다). 저희는 미술 생산의 ‘과정’에서 벌어진 착취와 ‘표면’으로 드러나는 작품 간의 괴리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결과인 작품은 과정과 전혀 다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L작가의 로그인 과정을 상상해볼까요? 가령, L작가는 어시스턴트와의 작업을 ‘과정’, 그리고 당시의 목적이던 전시회 속 자신의 작품을 표면이 될 ‘결과’로 상정했을 겁니다. 이때 결과를 낳을 과정은 일종의 보안 절차가 됩니다. 어떤 식이든 일단 결과의 표면을 통과하면, 생산 과정은 질문 밖으로 벗어납니다. 피아☆방과후는 이 순간이 바로 ‘로그인’이며, 이 순간을 다루는 L작가의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고 기억합니다.

위 그림은 유추를 통해 L작가의 로그인 감각을 도식화한 것입니다. B여사의 말에 따르면 L작가는 한 달 주 5일+α 근무에 60만 원 상당의 돈을 약속했는데, 어시스턴트들에게 종종 오전 10시~저녁 8시까지 공장 노동자처럼 일할 수 없겠냐 묻곤 했다 합니다. 위의 그림에서 작업의 결과와 과정을 분리하고, 어느 한쪽은 보안하려 할 때, B여사의 얼굴이 달걀 모양으로 페이스 스왑 하는 과정을 상상하며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로그인 감각에 문제가 있는 경우, 결과물로 제시되는 작업 세계란 남들이 보기에 공중에 뜬 면세점처럼 변하기 마련이니 주의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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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너럴매거진은 내실 있는 내부 비평이 부재하는 한국 미술계에서 구체적이고 생산적인 토론의 장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출발하는 웹포럼입니다. 지속적인 공론의 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은 미술인들이 하고 있기에, 웹사이트라는 공간이 가지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 가능성을 실험해볼 계획입니다. 또 가능한 한 다양한 나이대와 관점을 포괄하도록 필진을 구성하여, 담론이 작은 집단 내에 갇히지 않고 서로와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제너럴매거진은 매달 필자들이 제안한 주제들 중 하나를 선정하여 필자들이 릴레이식으로 글을 이어가는 월 단위 포럼입니다. 현재까지 미술계에 종사하는 작가, 비평가, 기획자 30명이 필진으로 모였습니다.”
-웹진 ‘제네럴 매거진’ 소개에서 발췌
“우리의 삶은 우리가 원하는 선택들로 이루어졌을 수도, 혹은 우리가 원하지 않는 선택들로 이루어졌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이 문제는 이제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을 각자의 방식으로 서슴없이 풀어내 보는 것입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타인과 삶을 나눌 수 있는 세상은 모래알로 가득한 백사장처럼 반짝거릴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비극이 되는 순간은 이 백사장에 모래알이 사라지고 몇 개의 커다란 바위밖에 남지 않을 때입니다. 이미 우리의 삶이 몇 개의 바위만으로 채워진 백사장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계속 대화해 나갈 수 있다면, 단단한 바위들도 서서히 반짝이는 모래알로 변화할 것입니다. 이곳은 정답을 이야기하는 곳도, 선택을 강요하는 곳도 아닙니다. 그저 작은 모래알이 반짝이는 수많은 백사장 중 한 곳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런 백사장이 점점 많아지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니 누구든지 이곳을 사용해 주세요.”
-웹진 크리틱-칼 소개에서 발췌
2012년과 2013년엔 기억에 남은 두 웹진이 있습니다. 2012년 경 생겼다가 100일 정도 후 사라진 웹진 제네럴 매거진, 그리고 2013년부터 현재도 이어지고 있는 크리틱-칼입니다. 제네럴 매거진은 다양한 나이의 작가, 비평가, 기획자가 필자로 모여, 당시 업계에서 꽤 화제가 되었습니다. 아쉽게도 현재는 온라인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제네럴 매거진 관련해서 재미있는 기억이 있는데, 게시자와 답글 부분의 익명/필명을 허용할 지에 대해 대해 내부적으로 찬반이 갈렸다는 점입니다. 본명을 사용해야 진정성 있는 ‘토론’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사람들과, 이름으로 권위를 빌어오는 것보단 내용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게 제대로 된 ‘토론’이 되리라 생각한 사람들이 대립했습니다. 이 외에도 각종 이슈에서 세대차이 같은 기류가 웹진 전반을 휩쓸던 기억입니다. 반면, 크리틱-칼은 미술은 왜 (온라인 커뮤티니 게시판에서처럼) ‘누구나’에 의해 말해지면 안 되는가라는 의문을 가지고 시작했습니다. 두 웹진을 통해, 미술계 내 구성원들의 로그인 방식에 선호도 차이가 있고, 일종의 차이가 가시화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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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생각 없이 미대를 졸업하고 나서 아주 막연하고 흐릿하게 미술가로 살아가는 삶을 목표로 세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 당시 관리자가 생각했던 작가가 되기 위한 조건들,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공모에 지원하는 ‘일종의 규칙’을 실천하기 위해 생활 공간인 반지하를 곰팡이와 낡은 벽지가 보이지 않는 하얀 장소로 바꾸던 일이 생각납니다.”
-2017년 7월 홈페이지에 게시된 반지하 관리자의 (처음이자) 마지막 인사글 중 발췌

2013년은 피아☆방과후 두 운영자에겐 상봉동에 있었던 ‘오픈베타공간 반지하 B½F'(이하 반지하)에 들락거리기 시작한 시기입니다. 지금은 상봉동에 엔터식스 같은 큰 쇼핑몰도 있지만, 당시엔 정말 볼거리 없는 조용한 주거지였습니다. 신생공간 시기 대표적 공간으로 이야기되는 반지하는 작가의 커리어나 그에 따르는 책임을 내려둔 채로 익명으로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초기엔 이런 공간이 있어야 하는 이유를 이해하는 이가 드물었지만, 금방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는 첫째로, 가진 것도 없이 성공과 실패를 논하는 굴레에서 나와 그냥 작업하고, 전시의 형태로 작품을 테스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작업실보다 더 작업실처럼 느껴졌습니다. 작가의 얼굴을 버려야 전시를 한다는 역설이랄까요? 둘째로, 그 역설에 대응하는 신생공간 활동이 되려 작업과 네트워크의 출발점이 되는 지점이 있었습니다. 공공 레지던시나 일반 작업실, 갤러리나 비영리 공간 등 여타의 다른 공간과는 달리 반지하에서 전시할 때엔 독특한 로그인 감각이 있었습니다. 로그인 감각에 영향을 준 몇 가지 보조적인 장치를 적어봅니다. 익명의 전시, 일관된 포스터 포맷, 상봉동이라는 장소성, 반지하 창문과 사다리를 통해 들어가야 하는 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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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생산자모임은 2012년 5.1 총파업 퍼레이드에 미술가-디자이너 그룹으로 참여했던 것을 계기로 결성되었습니다. 미술하면서 독립적으로 살아가기 힘든 문제, 미술제도 내의 불합리한 구조에 부딪히는 문제, 국가 예술 정책의 비정상성 등을 함께 얘기하고 활동하면서 미술환경을 바꿀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미생모 소개글 중 발췌

2013년 겨울, 아티스트 피를 주장하던 미술생산자모임의 첫 공개토론회와 그 직전 열린 내부 회의도 기억이 납니다. 당시 미생모는 전시의 예산 내에 전시 과정 중 작가의 노동 또는 노동하며 살아가는 작가에 대한 항목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문제 삼기 시작했습니다. 전시 과정에 로그인하는 순간부터 경제적 차원에서 작가의 신체가 유령이 된다는 점. 따라서 어찌 보면 설치에 필요한 목재만 못한 존재가 된다는 점을 지적한 공개토론회는 큰 반향을 얻었습니다. 전시라는 제도적 장이 열릴 때 우리는 업계의 일원으로 어떻게 로그인하는지? 질문은 단순히 비용에 대한 논의를 넘어 작품이란 무엇인지, 전시란 무엇인지, 예술가란 무엇인지 돌아보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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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25일 광화문에서의 로그인도 기억이 납니다. 미술에 대한 이야기라 하기엔 애매하지만, 당시 8월 22일경부터 세월호 가족들과 그를 지지하는 이들은 청와대 인근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농성을 벌였습니다. 10여 대의 경찰버스로 시작한 경찰은, 25일 무렵엔 100여 대의 경찰버스로 광화문 광장을 막았습니다. 이는 농성에 무관한 시민에게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아시겠지만, 2008년부터 2017년까지 한국 사회에 경찰의 차벽으로 이뤄진 ‘던전’은 시민들에게 흔한 풍경이었습니다. 로그아웃 때마다 신분증을 경찰에게 보여주며 방패 벽 사이 통행을 문의하던 기억은 아직 생생합니다. 2011년 헌법재판소가 ‘차벽’을 위헌이라 판단했음에도, 경찰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3D 프로그램에 로그인 해 하얀 단상과 가벽을 배열하는 미술가처럼, 누군가는 도시 중심부에 위치한 광장을 던전으로 만들고, 그 안 밖엔 1인칭 시점으로 로그인 해 버스 사이 틈이 물병을 전달하기에 충분한지 타진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상봉동 반지하의 창문으로 들어가거나, 차벽 사이를 기어가거나, 방패 벽이 잠시 열리면 후다닥 들어가던 기억. 입구 같지 않은 입구의 경험이 줄 지어 떠오르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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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김동희 작가의 로그인 감각도 볼만합니다. 그는 ‹나열된 계층의 집›에서 여러 협업자가 함께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었습니다. 타인을 내 작업에 초대할 때 그 사람이 단지 소모적으로 이용된다고 느끼지 않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어떻게 해야 나를 투명하게 할 수 있을까요? 2019년 현재 그의 작업 방식은 더 복잡해졌지만, 김동희 작업에서 ‘투명도’란 자신이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어떤 레이어가 투명해져야 타인의 작업이나 동선이 드러나는가에 대한 문제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 프로젝트에 얽힌 서로 다른 이의 플레이 결과가 어느 한 명에게 온전히 귀속되는 지점이 불투명도 파라미터 100이라고 친다면, 그는 1부터 100 사이의 결과를 저울질하고 있다는 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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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근데 이게 메타 전시니까. 이번엔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강: 맞아. 일종의 체크리스트처럼 전시를 만들었으니까. 전시라는 게 성립하는 체크리스트를 채워놓고 나면 안에는 텅 빈 것만 있어도 되는 거지. 글이 전시보다 먼저 나오면서, 이게 일종의 메타전시로 기능하게 될 거라는 예상을 했고, (글 자체가 전시 홍보 역할을 하기도 했고) 우리가 전시 리플렛에 <서울의 인스턴스 던전들> 글을 싣는 것 만으로 사람들이 신생공간의 역학이라던가 이런 것과 전시를 엮어서 생각하려 할 거라는 것. 실제로 전시장에 오면 그런 전시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지만. 뭘 하더라도 그게 공간과 지금의 미술씬과 강하게 엮일 테니까 전시의 체크리스트는 채워진다는 생각이 들었어. 글을 좀 알리바이처럼 쓴 거지.”
-전시 던전의 도록 ‘데빌 와이파이 백화점’ 중 발췌

이어서 저희 둘과 한진, 김정태, 김동희의 공동 기획, 2015년의 전시 «던전»을 적극적으로 전시의 로그인 방식을 실험한 예로 들어볼까 합니다. 참여작가와 합의 하에 강정석은 ‹서울의 인스턴스 던전들›이란 제목의 글을 전시가 열리기 전 발표했습니다. 글은 게임이나 판타지 문학에서 주로 사용되는 ‘던전’이란 단어의 의미를 서울의 신생공간, 공간마다 다른 게임적 룰, 그 안을 돌아다니는 인물의 움직임, 이를 연결하는 사회적-기술적 배경으로 확장해 다뤘습니다. 당시 강은 글과 지식을 알리바이처럼 사용하는 전시가 많다 생각했고, 그런 방식을 역으로 적극 이용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강은 전시와 다른 맥락에서 이미 발표한 글을 ‘던전’이란 단어를 매개로 전시 «던전»에 연결 지었고, 해당 글이 마치 전시의 내용처럼 작용하면서, 정작 ‘전시’ 그 자체는 텅 빈 채 남게 되는 효과를 낳는다 생각했습니다. 이런 점이 결과적으로 던전이라는 공간감을 만들어내리라 봤습니다. 전시를 준비하지만, 정작 그 내용이 무엇이어도 상관없을 거 같은, 공간에 아무것이나 채워도 문제가 없다는 감각으로 다 같이 전시를 만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무척 신나는 일이었습니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추후 열릴 전시의 모습을 상상할 때, 공동 기획자들은 이미 전시가 철수되어버린 텅 빈 공간이나 철수를 앞두고 마지막 손님이 나가서 불이 꺼진 전시장에 가까운 뭔가를 떠올렸습니다. 이 공간에 비계를 세우듯 들어선 게임적 룰이 전시 전반의 협업 과정에 끼어들었는데, 이 변칙적 로그인 과정에서 느낀 ‘무슨 작업을 해도 좋다’는 해방감은, ‘미술가는 무엇이든 해도 된다’랑은 분명하게 달랐습니다. 예를 들면 ‘무엇을 해도 던전 안에 있을 것이다’ 같은 기분인데, 몇 달이나 공항 면세점을 산책하는 기분과 비슷할 거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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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부터 사일삼은 공간을 운영하기에 불충분한 현실적 제반들을 가볍게 이용해보고자, 공간을 사용하는 사용자와 운영자간의 물리적, 정신적인 노동력의 사용을 최소화하는 공간 사용 메뉴얼을 제작했다. 앞으로 공간 사일삼은 이 공간사용메뉴얼을 통해 사용자들과 접속할 것이며, 이로써 공간을 들러가는 사람들간에 부드러운 이동이 이루어지도록 한다.”
-공간사일삼 홈페이지 소개글 중
2015년부터 공간 사일삼은 ‘공간사용매뉴얼’을 만들어 전시를 이어왔습니다. 전시를 하려면 보통은 운영하는 사람을 만나 협의를 거쳐 공간에 진입하게 됩니다. 사일삼이 제시한 매뉴얼이란 이런 과정을 최대한 자동화한 일종의 맥도널드 키오스크 같은 절차로 볼 수 있습니다. 중간에 사람이 오가는 구조를 좀 들어내면서, 전시라는 통로를 좁혀 통로 속 유속을 쾌적하게 조절하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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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의 포스트-굿즈의 플랫폼에선 로그인에 대한 실험이 더욱 다양해졌습니다. «더 스크랩», «취미관», «더 팩», «퍼폼» 등의 행사에서 일어난 시도를 말합니다. 이때 로그인은 사용자 경험으로 바꿔 말할 수 있는 무언가입니다. 이젠 일상이 된 공유경제의 핵심적 인터페이스가 미술계에서 적극적으로 시도되는 장면입니다. 지도 앱에 표시되기 위해 사용자의 신체 정보가 점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포스트-굿즈의 플랫폼에 로그인하는 관객, 작가, 작품의 신체는 다양한 변형을 겪습니다. 이런 변형은 어떤 이에겐 축소로, 어떤 이에겐 확장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2016년은 또 다른 의미에서 무척 중요한 한 해로, 이를 기점으로, 신생공간을 비롯한 미술계의 ‘정상성’에 기반한 실천 밖을 보려는 시각이 두드러지기 시작합니다. 특히 2016년 10월 중순부터 트위터에서 #미술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가 퍼지며 한국 미술계의 ‘우리’가 무엇인지 묻는 질문이 수면 위에 올라왔고, (현재 진행형인) 이 질문 덕에 누구라도 자신의 로그인 방식을 점검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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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을 돌아보면, 2017년 동료 작가 H는 스스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앞서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은 ‘정체성’ 뿐 아니라 ‘계급’이기도 하고, 범주화하기 어려운 개인적이거나 극도로 주변적인 상황이기도 합니다. 피아☆방과후의 두 운영자는 2016년 이전 신생공간 시기의 어떤 들뜬 감각을 기억합니다. 가용할 수 있는 폐허들(공간), 이리저리 모였다 흩어지는 인력, 되는대로 모인 자원(폐자재의 재사용, 전시장을 옮겨 다니는 자재, 누군가 가진 프로젝터, 누군가가 잠시 빌릴 수 있던 장소, 누군가 얻어낸 공공재원 등). 이를 이용해 다양한 전시와 프로젝트가 끊임없이 이어지던 시기엔 위의 그림처럼 동일한 사이즈 달걀이 무대 위로 마구 로그인하는 것처럼 느껴지곤 했습니다. 그럴 땐 로그인 한 모두가 정말 ‘평등’하거나 ‘동등’한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이는 보안된 로그인의 결과일 뿐이고, 정말로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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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북서울 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단체전 «유령팔»에서 김동희는 ‹궤도, 이동/복사›란 제목의 커다란 설치물(830x1350cm)을 선보였습니다. 저희는 2018년의 사진첩을 보다가 이 작업에 대해 잠시 대화를 나눴습니다. 도날드 저드의 작품 ‹스택›을 무책임하게 드래그 해 복제/스케일 업한 듯한 이 작업은 뭘까요? 작가의 언급에 따르면 작품의 제목인 ‘궤도, 이동/복사’는 스케치업의 툴 이름이고, 스케치업의 3D 공간 속을 유영하고 조작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기능을 말합니다.
작품은 1층과 2층 전시실에 걸쳐 있었기 때문에, 관람객이 프로그램 속 마우스 커서가 되기라도 한 것처럼, 이상한 공간감을 느끼게 하는 데에 목적이 있었을 거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게 무슨 말일까요? 도면을 토대로 현장의 테크니션이 제작한 거대한 작품의 주위를 돌던 기억을 돌아보면 이게 뭔 농담이었나 생각하게 됩니다. 미니멀리즘이 꿈꿨던 어떤 환각-로그인 과정이 스케치업과 같은 애플리케이션을 거쳐 2018년의 북서울에 잠시 드러난 것인지? 전시 후 다시 목재 폐기물로 환원된 것이고?
이 작품은 엉뚱하게도 지난 2010년대와 꽤 잘 어울립니다. 모종의 보안 절차를 마친 전시회들이 줄을 지어 열리고 닫히며 지나간 시간. 황당하게도 제대로 된 하얀 큐브 하나 기억나지 않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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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연말, 홍콩의 자유를 지지하는 사진 판매 행사 «더스크랩: 해피투게더»에 다녀왔습니다. 지역주의와 분쟁이 심화되는 세계 속, 여기 동아시아 서울에서, 향후 10년은 어떤 빈틈으로 로그인 하게 될지 상상하는 연말입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