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방과후에 어서오세요!

어느새 더위, 우리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만나기로 했다. 이 시기에는 어떤 시간에도 항상 북적거리지. -> 음료 한잔으로도 실컷 떠들 수 있지만, 오늘은 세트 메뉴로. 이것은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나눈 대화의 기록이다.

1.

2014년 트위터에서 후쿠시 치히로의 그림을 처음으로 접했다. 그는 일본의 ‘인터넷 이후의 흐름’을 대표하는 미술 집단인 ‘카오스라운지(カオス*ラウンジ)’의 전시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는 만화가이다. 인터넷을 통한 혼종적 교류가 일상이 되었고, 그런 흐름이 일본의 현대미술에도 영향을 끼쳐, 미술 전시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나는 이름을 검색해 나오는 링크들을 이것저것 저장해 두었다.

2015년 전시 «던전(Dungeons)»(CC101, 공간 사일삼, 개방회로, 200/20, Seoul, 2015)을 공동기획하는 과정에서, 열의가 넘쳤던 김동희, 김정태, 이수경, 한진과 나는, 세 번의 전시와 한 번의 출간기념회를 포함한 지옥체험을 스스로 계획했다. 이때 우리는 지옥체험의 보상으로 세 번의 전시를 모두 마친 후 다 같이 오사카 여행을 가기로 약속을 했다. 일민미술관의 전시 «뉴스킨(Newskin)»(일민미술관, 2015)의 설치 전반을 책임져야 했던 김동희가 약속을 지키지 못했지만, 그 외 모두가 일본행 피치항공에 몸을 실었다. 전시 «던전» 진행 초기에, 우리는 서로의 작업에 대해 학부 시절 이미지부터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한진 작가의 작업을 2008년작 부터 연대순으로 보면서, 나는 후쿠시 치히로의 작품을 동시에 떠올렸다. 그에 대해서도, 한진 작가에 대해서도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누구를 따라 했다는 식의 ‘파쿠리(パクリ)1’ 이야기가 아니고, 레드벨벳의 데뷔 MV를 처음 보았을 때처럼, 멤버의 유사성 속에서 차이를 발견해나가는 일이 재미있겠다 생각했다. 둘은 90년대 후반~00년대 초의 게임, 만화 등의 서브컬쳐 이미지에서 영향받아 작업세계를 이어오고 있고, 그 점은 같은 시기를 겪은 내게 큰 흥미가 되었다.

@Kil jagi 이미 납작해진 시공간 속에서 이 사람들은 뭘 하고 있는 거야?

앞서 언급한 여행에서, 오사카 기타 구에 위치한 독립서점 시카쿠(シカク)에 방문해 후쿠시 치히로의 만화책 2권을 살 수 있었다. «천 년과 천엔(せんねんとせんえん)»(2012), «푸드코트에 안부를(プードコートに4649)»(2014). 각각 100여 페이지 두께의 만화책이다. 이를 천천히 읽어가며 즐기는 시간과 한진 작가가 활발히 활동했던 2015년의 나머지 시간이 병렬적으로 지나갔다. 그래서 피아★방과후의 첫 번째 전시는, 한진과 후쿠시 치히로의 2인전으로 기획되었다. 초기 기획안에 ‘전시는 2명의 유사성에서 시작해 그다음의 이야기를 발견해 나가는 일’이라는 것을 밝혔다. 애석하게도, 전시 직전에 한진 작가에게 메일을 한 통 받았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전시 참여가 어렵다는 메일이었다. 전시 준비가 꽤 진행된 터라, 이러한 사실을 일본의 작가 후쿠시 치히로에게 알렸고, 다행히 작가의 배려 덕에 전시는 그대로 진행하게 됐다.

기획 초기 두 작가에게, 피아★방과후는 가상의 2.5D 전시 플랫폼이라는 점을 설명했다. 첫번째 전시의 경우, 먼저 가상의 공간을 설정하고, 그 공간을 현실에 구현하는 방식으로 어딘가 설치하는 계획이라는 내용이다. 여건이 안되면 한없이 줄어들고, 가능하다면 얼마든 늘어나는 전시 공간. 그러면서도 비례는 그대로 유지하는 그런 공간을 상상했다. 일단 전시는 현실의 아무 쾌적한 통로에 기생하도록 하고, 서로 대화를 나누어 가자는 생각을 했다. 오늘날 나 자신이 이미지를 접하는 방식대로, 자연스럽게 전시와 대화를 이어가는 상상을 한 것 같다.

각 작가에게 동일한 사이즈의 드로잉을 1점씩 받아서 프린트하고, 이를 외대 정문 앞 맥도날드 내 테이블에 90도로 직교하게 설치하는 방안을 메일로 보냈다. 이것이 최종안이 되었다. 후쿠시 치히로와의 협의로, 한진의 작품에 해당하는 면을 백지로 남겨두었음을 밝힌다.

2.

-> 우리는 결국 한진에 관해 이야기 하고, 나는 후쿠시 치히로의 작업 «푸드코트에 안부를(プードコートに4649)»을 떠올리다가 대화를 간혹 놓친다.

후쿠시 치히로는 그림을 그립니다. 그것은 치과의 대기실에서 읽은 만화, 스티커를 모은 수첩, 다이에(ダイエー)2의 푸드 코트. 플레이 스테이션 게임의 폴리곤 틈새에 떨어진 것 같은, 마살라 타운 울타리 너머의 풀숲에 박힌 것 같은. 그런 그림일지도 모르고, 전혀 다른 것일 수도 있습니다.
– 2013년 Aquvii TOKYO에서 가진 개인전 «돌스톤고양이캣(石ストーンねこキャット)»에서의 작가 소개.

후쿠시 치히로와 한진은, 서로 다른 공간에서 각자 90년대 말~00년대 전반에 형성된 일본 문화에 젖어 자랐다. 유사한 시기의 비디오 게임, 만화(특히 소년만화)이지만, 한 명은 원산지에서 ‘자국의 문화’를 즐겼고, 한 명은 ‘일본발 문화’를 즐기게 되었다는 점은 이후 유의미한 차이를 만들어 내고 있을까?

일본과 한국에서 자라온 사정은 다르다 해도, 각자 안테나를 치고 있고, 이런 작풍이 되어왔다는 것. 한 님, 이런 기획을 하게 된 강 님, 두 사람 모두 나와는 다른 배경에서 지금 이러한 활동을 하는 것. 이상한 기분이네요. 하지만 게임을 하고 자란 세대와 인터넷 네이티브 세대에서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지금 있는 장소나 자란 장소가 점점 관계없어져 가고 있다고 느낍니다.

후쿠시 치히로는 «크래시 밴디쿳(Crash Bandicoot)», «삐뽀사루 겟츄!(サルゲッチュ)»같은-노스탤직한 로우폴리곤으로 기억되는-게임과 쿠소게(クソゲー)3의 영향을 이야기한다. 작가 본인의 표현에 따르면 ‘만들어진 세계에 자신이 던져진 감각을 못 견딜 정도로 좋아’한다. 그는 매장에 떨이로 나온 쿠소게 바구니가 있다면, 이를 보석함으로 보는 유형의 인물이다. 한진에게선 과거 캡콤 게임의 일러스트를 담당했던 아키망(安田朗), «The King of Fighters» 시리즈 일러스트로 유명한 모리 토시아키(森気楼) 그리고 «DOA: Dead or Alive» 시리즈에 등장하는 미소녀 캐릭터의 영향을 본다. (그가 동의하는지 모르겠지만, 한진은 자신에게 영향을 준 이미지들의 출처나 장르, 이름을 분류/저장하는 타입이 아니다. 위에 열거한 예는 그의 작품, 서로 나눈 대화에서 유추한 나의 추측이다) 혹은 그 외에도 여러 일러스트레이터의 이름을 떠올려 볼 수 있다. 두 작가 모두 어디선가, 어느 시절엔가 본 듯한 오리지널 캐릭터들을 가득 그려낸다. 그 시기의 ‘만들어진 세계’에 자신을 던져보았던 이라면 이는 매우 반가운 일이다.

(좌) 도판1: 전시 «던전»의 설치 세부 / 사진제공: 던전(Dungeons) /사진: 이헌지

한진은 해당 시기에 생산된 강하고-아름다운 미소녀 캐릭터에 자신을 투영, 드로잉과 회화를 제작한다. 손바닥만 한 종이일 때도 있고, 가끔 100호 정도의 캔버스에 그리기도 한다. 화면에 소환되는 캐릭터와 내러티브는 작가가 유년기부터 겪은 가정 내 가부장적 질서 및 종교 활동과 관계한다. 공간 사일삼에서 열렸던 «던전»의 두 번째 전시를 돌이켜보면, 그가 제작한 A0사이즈 포스터 두 장이 먼저 떠오른다. 하나는 대전 액션 게임 «DOA»의 미소녀 카스미를 닮은 누군가가, 투지와 분노가 가득한 눈을 치켜뜨고 있다. 그 옆 포스터는, 작가 자신을 닮은 캐릭터가 분노로 빨갛게 달아오른 채로 누군가를 향해 전투 자세를 취하고 있다. 상당히 단단한 몸집인데, 손의 모양을 자세히 보면 공격보다는 방어에 가까운, 다소 움츠러든 느낌이 담겨있다.

한진의 인스턴스인 이 유사-대전액션 캐릭터는, 자신에게 불안을 조장하는 질서에 맞서 단단한 자세로 일어선다. 불안은 매우 구체적인 시공간 속 대상으로부터 발생한 것일 테지만, 작가는 그 시간으로부터 멀리 지나왔거나, 공간적으로 먼 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혹은 문제가 전혀 다른 평면적 차원으로 옮겨졌다. 그 외에도 3981274924개의 비슷한 이유. 이를테면 가부장적인 질서는, 공기처럼 사회 전반에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어, ‘나를 괴롭히지만, 전혀 붙잡을 수 없다.’ 그래서 구체적인 무언가가 아닌, 공기 같은 불안이 작업 주위를 맴돈다. 이 형체 없는 대상에게 명백히 승리할 수 없다고 느끼는 순간, 유사한 패배감을 주는 ‘공기’는 한국 사회 전반에서 얼마든지 발견된다. 한진의 캐릭터는 이에 수동적으로 대항하거나 좌절한다. 물론 때로 이에 대한 반작용에서, 방과후를 맞이한 중학생처럼 활기찬 미소의 동물을 그리거나, 뭔가 섹슈얼한 느낌의 색이 화면에 채워진다.

유령을 소환하여 그에 대응하는 필연적 좌절이나 지연된 불안을 화면에 묘사하는 작품은 셀 수 없이 많다. 한진의 작업은 불안과 그에 맞선 내적 투쟁의 재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기보다, 그 앞에서 캐릭터 스킨을 뒤집어쓰고 수없이 찍는 셀프 카메라라는 점에서 재미있다. 작가는 스스로가 소환한 유령 앞에서 지속해서 패배하거나 도망쳐 온 자신을 뚜렷이 자각하고, 수많은 인스턴스 한진을 제작해왔다. 극히 우울한 n번째 한진 혹은 한껏 신이 난 n번째 한진. 그의 드로잉은 주로 습기에 약한 종이 위에 그려지고, 이는 때때로 폴리 백에 담긴다. 습기로 치자면 완벽한 방어를 하긴 했다는 기분이 들지만, 실상은 쉽게 구겨지는 소재이다. 비닐 안쪽에 마커나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하는데, 이 경우에도 비닐 안과 밖의 구분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비닐은 캐릭터의 건조해야 할 내면을 담아내는 캐리어가 된다. 이는 오픈베타공간 반지하 B½F에서 열렸던 개인전 «오르가즈믹 스크랩(Orgazmic Scrap)»(2014)과 커먼센터에서 열린 단체전 «오토세이브(Auto save)»(2015)에서 그랬듯, 아예 구겨진 채로 전시장에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한 한진들의 위태위태한 보행을 연이은 전시의 타임라인을 통해 바라보는 일이 작년의 큰 즐거움이었다. 이들이 싸워나가거나 관계하는 ‘불안’은 90말~00초의 게임/만화의 시공간과 관련이 없는 오늘의 한진 작가가 살아가는 세계에서 연루된 것이다. 하지만 인스턴스 한진들은 당시의 대전 액션게임 미소녀이거나, 동물 캐릭터 스킨으로 나타나고 두 세계는 다소 유격이 난 채로 결합한다.

이런 말을 하면 시시한 기분으로 만들어 버릴지도 모르지만 나는 비교적 풍족한 환경에서 자란 인간으로 사회와 가정에 대한 불만이나 개인적인 큰 좌절 같은 것이 없어요. 그래서 그동안 자신이 그린 작품 속에는 그런 게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어느 쪽인가 하면 더 개인적인, 어쩔 수 없는 부분이나 쓸데없는 부분이 반영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장담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은 많은 사람이 그렇겠지만 나도 그 자신 없는 인간의 하나, 그래도 왠지 작품은 만들어 왔다. 왜? 아직은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을 가지고 있지 않은데요, “(작품 제작을) 하는 것으로 마음이 표류하는” 것. “아무 생각 없는” 그런 것이 하나의 키워드인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모르겠습니다만. 왠지 나이브한 대답이라 죄송합니다. 참고로 만화의 내용도 대체로가 언제나 그렇게 하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그려진 캐릭터의 존재도 한진 씨와는 의미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한진 씨의 경우에는 자신을 화면상에서 캐릭터로 묘사하고 그 위에서 싸우거나 고뇌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나의 경우 자신 속에 할 말이 없어서 더 개인적인 별거 아닌 마음을 거창하게 말하고 있다는 것이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황당한 느낌이 되는 것 같아요. 내 감정의 양과 그려지는 캐릭터의 감정의 양에 차이가 있습니다. 할 일은 없는데 소리 지를 같은, 어쩔 수 없는 점입니다. 게임에서로 치면 난이도 Easy를 금방 통과하고, 클리어 후의 세계에 내던져진 듯한 기분이에요. 쉬울지도 모르는 일을 일부러 어렵게 생각하고, 혼자 혼란하다는 느낌입니다.

90년대 후반~00년대 전반은 게임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했다. 기술의 발전, 다양한 시스템과 장르의 출현. 소비자의 확장. 그러한 변화를 하나하나 좇아가고픈 긴장감에, 하루 종일 자신을 그 안에 던져넣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 게임은 이제 에뮬레이터로 동작하거나 레트로 게임 샵에서 발견되는 다소 생경한 존재가 되었다. 후쿠시 치히로와 한진은 이미 납작해진 레트로 게임의 메모리카드에, 자신의 망상을 기입해 생명을 불어넣고, 게임을 지속하고 있다. 엔딩을 본 후에 게임이 끝난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한 게임들을 처음 접할 당시에는, 엔딩 직후 게임 속 세계에서 튕겨나는 자신이 서글퍼 견디기 힘든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새 세계는 게임이 되었고, 누군가는 한때 자신이 ‘던져졌던 세계’의 경험과 ‘살아가게 된 세계’를 싱크로하는 기묘한 메모리카드가 되었다.

-> 피아★의 멜로디가 흐른다.

3.

-> 미디엄 콜라를 사이좋게 2컵 리필한다. 나는 «푸드코트에 안부를(プードコートに4649)»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전시와 링크만 되어있는 물건이지만, 피아★방과후는 통로에 기생하며 이러한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링크를 더듬어 나가고, 이미지에 대해, 그 뒤의 링크에 대해 알게 된다. 전시를 둘러싼 무언가가 점점 고해상도로 변해간다. 후쿠시 치히로의 «푸드코트에 안부를(プードコートに4649)» 및 다른 몇 권의 만화책은 국내에 정식 발매되지 않았다. 다만 인터넷을 통해 구매할 방법4은 있으니, 관심이 가는 이들은 꼭 찾아보기를 권합니다. 아래의 내용은 약간 스포일러.(위) 도판2: «푸드코트에 안부를(プードコートに4649)» 표지 / 이미지 원저작권은 후쿠시 치히로(福士千裕)에게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스토리를 생각하는 일을 잘하지 못한다는 네거티브한 이유도 조금 있습니다만, 기본적으로 그리고 싶은 장면이나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고, 말하게 하고 싶은 대사를 캐릭터에게 시키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은 만큼 한다. 라는 것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저로서는 언제라도 대 장편 스토리의 일부를 써서 모으고 있다는 마음으로 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드로잉을 하고 있을 때의 기분과 같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만화를 그리고 있을 때와 무언가 드로잉하고 있을 때의 기분을 같게 하고 싶어서 일지도 모릅니다. 확실히는 모르겠습니다. 애매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 후쿠시 치히로와 강정석이 피아★방과후에서 주고받은 대화에서 발췌

피아★방과후의 첫 전시 «방과후 맥도날드 ~모기와 치즈버거~(放課後マクドナルド〜蚊とチーズバーガー〜)»5에 설치된 작업 «ぷ(Pu)»(2015)는 후쿠시 치히로 세계의 작은 단면을 보여준다.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이 그림은 꿈의 섬이라는 곳에 있는 열대 식물원을 배경으로 하고, 그 속 통로에서 한 소년과 배에 ‘푸(ぷ, Pu)’라고 쓰여있는 사역마 같은 생물이, 뭔가의 공격을 받는 그림이다. 포켓몬의 폭넓은 성공 덕에, 일단 포켓몬 같다는 인상이다. 하지만 그러한 컨셉의 게임과 만화는 포켓몬의 성공 이후에 수없이 많이 제작되었다. 레퍼런스가 연결된 링크의 ‘시기’는 중요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후쿠시 치히로의 만화는 이러한 장면의 연속이다. 링크의 다발이 된 인물, 사물 등이 평면 위에 놓여있다. 당신은 그가 그리는 세계관에 왜인지 친숙하고, 그 세계의 단편을 축적해 나가는 가운데 세계의 분위기와 스케일, 현안 등을 짐작할 수 있다.

(우) 도판3: «푸드코트에 안부를(プードコートに4649)» P. 28-29 스캔 이미지 / (우) 도판4: 같은책, P. 72-73 스캔 이미지 / 이미지 원저작권은 후쿠시 치히로(福士千裕)에게 있습니다.

예로 앞서 홍보한 «푸드코트에 안부를(プードコートに4649)»을 펼쳐보자면, 첫 페이지부터 102페이지에 도달할 때까지, (작은 예외를 제하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위와 같은 장면이 펼쳐진다. 이름 모를-무언가 친숙하고 노스탤직한- 캐릭터가 등장하고, 뭔가의 공격을 받거나, 급격히 행동을 취한다. 무엇과 전투를 벌이거나 회피하는지는 (대체로) 묘사되지 않고, 매번 다른 캐릭터의 다른 상황이 펼쳐진다. 유사-사역마가 인물 옆에서 상황에 첨언하는 모습, 독특하고 능력 있을 법한 인물이 모여 무언가를 따져보는 장면이 반복된다. 잃어버렸던 웹사이트의 바다, 오래된 푸드 코트 등의 장소를 모험하는 인물들이 나오고, 구체적 내용 없이 전체 세계의 분위기나 스케일 같은 것이 은연중 전해져 온다. 세계 속을 표류하는 인물들의 현안은 아직 모르거나 아마도 없다. 다만 그들은 성장하지 못한 세계에 후쿠시 치히로라는 메모리 카드를 매개로 계속 존재하고 있다. 당신은 친숙한 그들에게 감정 이입해 1인칭이 되고, 자신의 메모리를 더듬어 화면 바깥에 있을 ‘적’이나 ‘현안’을 마주하는 상상을 한다.

위와 같은 묘사를 하면 무언가 쓸쓸한 느낌이지만, 실제로는 매 장면 깨알 같은 볼거리가 담겨 있다. 피아★방과후의 전시 포스터나 전시장에서 만났을 작업 «ぷ(Pu)»처럼, 특정 시기의 게임, 만화를 연상시키는 링크의 다발이 된 캐릭터, 사역마를 보며 더듬어 나가는 재미 이상의 것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어린 시절의 놀이 경험을 떠올리게 하는 연출이 있다. 뭔가의 퍼즐을 맞추는 인물과, 이를 도와주려 하지만 도움이 되지 않는 장난꾸러기 유령 같은 것들이다. 마법이나 인술 정도는 가볍게 사용할 것 같은 인물들이 나타나 아이처럼 뭔가에 집중해 있고, 사소한 일에도 서로 젠체하거나, 다투거나, 탐구해 나간다. 후쿠시 치히로의 ‘게임’ 속 기입된 캐릭터의 동작은, 사소한 상황에도 꽤 멋지게 애니메이트 된다. 상당한 디테일이 아무렇지 않게 매 페이지 펼쳐진다.

이런 세계를 지속해 나가는 작가의 동력은 무엇일까? 단순히 유년기의 추억에 폐쇄적으로 안부를 묻는 것일까? «푸드코트에 안부를(プードコートに4649)»에 담긴 말풍선 속 대화에서, 이러한 의문은 의외로 쉽게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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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집에 가는길에 부르고 싶었던것이 생각난다

그렇게 매일 여기저기를 왔다갔다 하는데에도 지친지 꽤 오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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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SE(Sound Effects)가 하나도 없어. 사람의 SE도 새한테 나는 SE도 차의 달리는 SE도 전부

성별, 종족, 얼굴, 머리스타일, 직업. 머리스타일이나 색은 나중에 바꾸는것도 가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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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잃어버린 홈페이지거나 바다야

지정된 페이지 또는 파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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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이에 뭐가 있었던거야

한 번 정한 이름은 바꿀수 없어. 미안한데 원래 그런 설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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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고 점장 불러와 ! / 나는 점원이 아니다

보조마법이라면 죽도록 걸어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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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라스트배틀이야. 장비를 확인하자

잊혀진 ‘홈’이 아닌 ‘홈페이지’의 바다를 표류하고, 그저 뭔가가 있었다는 것만 파악하게 되는 세계. 음식은 없지만, 음료 디스펜서는 동작하는 다이에의 푸드 코트. 자유롭게 변경 가능한 것 같지만 정작 중요한 건 변경할 수 없다는 설정. 이펙트가 빠진 듯한 고요함. 책임져야 할 인물로 보이는 이에게 전혀 책임이 없는 상황. 이러한 세계를 표류하다가 누군가는 어느새 라스트 배틀을 앞두고 장비를 체크한다. 보조마법만큼은 죽도록 걸어준다는 말에 속공으로 끝내기를 다짐하는 모습. 후쿠시 치히로를 매개로 한 두 세계의 사이에 발생한 기묘한 장소를 경험하는 독자에게, 두 곳 모두는 일종의 쿠소게로 드러난다. 언젠가는 ‘대 장편’으로 정리된 과거로 지금을 돌아볼 수 있을까? 그때 두 작가의 메모리 카드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4.

-> 후아~실컷 떠들었다. 피아★방과후의 장점은 가격대비 최고의 쾌적함! 피아★방과후에 또 오세요!

작성: 강정석
사진: 김익현
제공: 피아★방과후

  1. 도둑질을 가리키는 속어 ‘파쿠루(パクる)’에서 유래한 단어. 주로 트레이싱, 표절에 관해 이야기 할 때 사용한다.
  2. 일본 고베를 기반으로 하는 슈퍼마켓 체인.
  3. 쿠소 게임의 줄임말. (クソゲー, 糞ゲー) 똥, 쓰레기, 젠장 등을 의미하는 ‘쿠소(くそ)’와 게임을 합친 것. 망한 게임, 쓰레기 게임 같은 의미이다. 주로 엉망인 그래픽, 저질 사운드, 어처구니 없는 버그, 최악의 인터페이스, 난이도 조절 실패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드러난다.
  4. fukushichihiro@gmail.com 혹은 twitter @fukushichihiro 에 문의. 또는 홈페이지의 안내를 참고. http://zombiebi.web.fc2.com/, http://5bangaimac.web.fc2.com/
  5. 후쿠시 치히로와 동료가 속한 동인 그룹 ‘오번가 맥(五番街マック)’과 관련이 없음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