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노 유키는 한국과 일본의 미술을 오가며 숨이 트이는 틈새를 모색하고 있다.

콘노 유키(Yuki Konno)는 대학원에서 예술학을 전공하고 있다. 통·번역, 미술 전시 기획 및 비평을 기회가 닿는대로 하고 있다. 2018년 시청각에서 전시 «애프터 10.12»를 기획했고, 올해 5월엔 도쿄도 시나가와구에 위치한 카오스*라운지 고탄다 아틀리에(カオス*ラウンジ 五反田アトリエ)에서 한-일 동시대 미술에 관한 전시, 6월에는 카나가와현 사가미하라시에 위치한 파프룸 갤러리(パープルームギャラリー)에서 한국 동시대 작가 7인을 소개하는 전시를 기획 중이다.

 

어쩌다 여기서 미술을 하고 있어요?

콘노 유키 :  사실 어릴 때부터 취미로 피아노를 배웠어요. 고등학생 때부터인가 미술 관련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부모님 영향이 컸던 거 같아요. 제가 음악을 배우고 또 미술 공부도 한다고 했는데 장남인데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바로 오케이 해주셨어요. 믿고 보내주는 느낌이었어요.

한국에는 언제 오신 거예요?

콘노 유키 :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왔습니다.

어릴 때 오셨네요. 부모님께서 보낼 때 뭐라고 하셨어요?

콘노 유키 : 부모님은 제가 일본 안에서 내내 공부하는 것보다 다른 나라를 통해 타문화를 접해보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유학을 보내고 싶다고 하셨죠. 처음엔 영미권이나 유럽에 가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을 하셨다가, 제가 아무래도 영어를 잘 못해서···한국으로. 한국어는 주어, 목적어 순서가 같고 한자도 비슷하게 쓰니까 발음도 비슷하고요.

한국어를 그전부터 했던 거예요?

콘노 유키 : 아니요. 유학 이야기가 나와서 ‘한국에 좀 가야 되는 거네’ 그렇게 생각하고 공부를 했어요. 스스로 공부를 꾸준히 하는 습관이 있었던 것 같아요. 처음 한국으로 가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당연히 거부감이 들었어요. 하지만 설득을 당해서 ‘아 알겠다. 타문화를 접해보겠다’ 그러고 나서는, 다이소 같은 곳에서 파는 간단한 한국어 책부터 시작해서 단어를 외우는 트레이닝을 꾸준히 했어요. 단어장 같은 것을 스스로 만드는 거죠. 운동장이 있으면 일본어로 ‘운동장’ 이렇게 쓰고, 옆에 한글로 쓰고. 문법이나 어휘 같은 부분은 여기 와서 어학원을 한 1년 다녔어요. 거기서는 듣기, 말하기, 쓰기, 읽기 이런 것을 다 해주니까 1년 동안 그곳을 다녔다가 졸업하고 바로 중학교를 들어갔어요. 보통은 국제학교를 다니는데···저는 일반학교를 지원해서 가게 되었습니다.

주변에 한국에 사는 일본인 친구가 있죠? 콘노 유키 씨 같은 경우가 있어요?

콘노 유키 : 가끔 있어요. 부모님과 같이 온 경우라면. 근데 아무래도 다들 고등학생 때까지 있다가, 바로 일본 대학으로 진학하거나, 영어가 되는 사람은 미국으로 가거나···그런 사람들이 많고 저처럼 오래 한국에 있는 사람은 잘 없어요.

혹시 그렇게 오래 있었으면 영주권이?

콘노 유키 : 영주권은 따기 어렵다고 들어가지고. 일단 지금은 학생 비자가 계속 나오고 있어요. 만약 한국에서 취직을 한다면 워킹비자가 나오고요.

쉽지 않겠네요. 재작년 가을에 처음 뵈었을 때 좀 놀랐어요. 이런 분이 있구나. 이 사람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콘노 유키 : 네네네. 9월 1일인가 그때죠.

맞아요. 그 후, 지난 1년 반 정도 여러 가지 일을 많이 하시는 걸 봤고요. 전시를 엄청나게 체크하시고.

콘노 유키 : 제가 직접 ‘이런 걸 하겠습니다’ 하고 일을 해본 적이 별로 없고, 그냥 꾸준히 해야 될 일이 있으면 했죠. 예를 들어, 글을 쓴다거나. 그러면 누군가가 그걸 보는 식. 기다리는 자세인 거예요. 와우산 타이핑 클럽에서도 ‘같이 글을 써보는 게 어떠냐’고 얘기가 왔었어요. 저에게 중요했던 계기는 재작년 광주에서 사람들을 만났을 때인 것 같아요. 고민을 많이 하던 시기였어요. 단순히 일본어와 한국어를 둘 다 하는 사람은 홍대 주변에 너무 많으니까요. 사실 라멘 집 알바생이 다 그렇잖아요. ‘나는 도대체 어떤 걸 해야 할까···어떤 걸 나의 장점으로 가지고 가야 되는 걸까’하는 고민이 있었어요. 와우산 타이핑 클럽을 같이 하는 사람들의 영향도 있었고, 광주에서 강정석 씨, 김희천 씨, RMHN 씨를 만나서 얘기를 나누다 보니 ‘아 한국의 동시대 미술에 관심을 가져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지금은 하고 있는 분야 관련해서 자부심이 생겼어요.

와우산 타이핑 클럽에서 활동 전부터 전시 글 올리고 계셨죠?

콘노 유키 : 그 전에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하는 서양 작가 전시라든가. 그런 부분에만 관심이 있었고, 한국의 동시대 작가들에 대해서는 뭔가···. 저 스스로가 맥락을 못 잡고 있었어요. 물론 관심은 있었는데 어쩐지 잘 안 외워지고···.

저도 일본 작가 이름을 외울 때 가끔 어려워요. 그럼 1년 정도의 기간 동안 갑자기 전시를 엄청 보게 되신 거군요.

콘노 유키 : 주변의 와우산 타이핑 클럽 동료들이 계속 그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산수문화를 갔다, 아카이브 봄을 갔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모르는 게 너무 창피한 거예요. 되게 자극이 됐어요. 저 나름 ‘이 사람들한테 지지 말아야지’하는 고집이 있었어요. 좀 강박적으로 다녀보면 캐치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하고 ‘전시 격납고’를 만들기 시작했고, 기간 맞춰서 볼 수 있는 전시는 다 봤어요.

연초에 와우산 타이핑 클럽에 올라온 ‘2018 전시 결산? – ✍️콘노 유키’를 보니, 작년 한국에서만 총 304개의 전시를 관람하셨다고. 이만큼 전시 보러 다니는 사람 정말 드물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콘노 유키 : 지금 마지막 학기라서 그런 영향도 있었을 거 같아요.

유키 씨를 누군가에게 소개한다면, 번역/ 통역가, 비평가이자 기획자네요. 참 많은 일을 하신다 싶은데, 그 와중에 그만큼의 전시도 빠짐없이 챙기시는 걸 보면서 궁금하더라고요. 어떤 생각을 하는지.

콘노 유키 : 사실 번역 관련해서는 전 아마추어예요. 학교에 다니면서 교수님이나 다른 분들 통해서 해본 적이 있는 정도. 예를 들어, 미술수첩이나 논문을 찾아보고 번역까지 하고 비용을 받고. 그런 건 사실 어느 정도 열정페이도 있잖아요. 서로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고, 이에 대해선 회의감이 들기도 해요. 반면 제가 만족감을 얻고 있는 건 한국 동시대 미술을 하는 동료분들과 같이 일을 하는 거예요. 서로 이해를 해주는 부분이 있어요. 저도 이해를 하고, 또 제가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이 좋아요. 17년 가을 통역을 위해 갔던 광주에서 작가분들과 대화를 하면서 오히려 내가 힘을 얻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 자리에, 한국에 방문한 우메자와 카즈키(梅沢 和木), 아즈마 히로키(東 浩紀), 우에다 요코(上田 洋子)와의 대화에서 얻은 것도 물론 많았는데, 일본 미술에 관해 관심을 지속해서 가지고 실제로 왔다 갔다 하는 한국 작가를 보니까, 어떤 식의 힘이라도 보태고 싶은 생각이 그냥 감정적으로 생기는 거 같아요.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감각으로 들려요.

콘노 유키 : 맞아요. 내가 라멘 집보단 동시대 미술 쪽에서 뭔가를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결국에는 들었어요.

최근의 일본 미술 또한 계속 팔로우하고 계셨나요?

콘노 유키 : 어느 정도는. 흐름을 따라잡으려고 하고 있었어요. 최근의 흐름에 관심이 생긴 지는 한 1~2년도 안된 거 같아요.

비슷한 시간에 시작해서 양쪽 씬을 둘러 보는 식이네요.

콘노 유키 : 한국 작가들하고 이야기하면서 많이 받는 질문이 일본의 동시대 미술은 어떤지, 그 씬을 어떻게 읽고 있는지인데, 막상 제가 대답을 못하면 이상하잖아요. 물론 이상한건 아닌데, 일본인으로서 여기 왔다는 사실 자체가 어떤 대표성을 띄는 느낌이 있어요. 그러다보니 사실 잘 모르지만, 아무래도 전달해야 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해서.

한국에선 일본 사회에서 일어난 현상에 많이들 관심을 갖잖아요. 일본의 사회 현상이 한국에 어떤 식으로든 번역되어 들어온다는 인식이 있어요. 저희는 사회에 그런 유사점이 있다면 무언가 같이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해요. 그러다가 작년 시청각에서 유키씨의 첫 기획전 «3X3: 콘노 유키 X 정유진 X 스기모토 켄스케: 애프터 10.12»을 봤어요.

콘노 유키 : 처음에는 기획을 하겠다는 생각조차 못했어요. 그런데 시청각을 통해서 제안이 들어온 거죠.  기획은 공부를 좀 하고, 뭔가 좀 쌓고 해야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제안이 들어오니까, 어떤 이유가 있어서 제안을 주신 것일 테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보는 게 어떨까 생각했죠. 스기모토 켄스케(杉本 憲相)와 정유진 작가 이 두 분과 같이 전시를 구성해 나간다는 자세로 해본다면, 뭔가 좀 해볼 여지가 생기지 않을까 하며 그렇게 진행이 됐어요. 아무래도 작가와 대화를 많이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일본에 가서 스기모토 작가를 직접 만나기도 했어요.

스기모토 켄스케와 정유진 작가 둘 조합은 어떻게 생각하게 되셨나요? 스기모토 켄스케 작가 작업을 예전 도쿄에서도 보았었는데, 시청각에서 보니 작업을 이루는 시멘트 돌덩이 부분이 더 드러난 점이 좋았어요.

콘노 유키 : 처음에는 정유진 작가랑 같이하기로 했어요. 정유진 작가 작업은 2017년 한예종 조형예술과 졸업 전시 때 봤었고, ‘작업이 시청각 공간하고 딱 맞네’라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흥미롭게 봤던 작업은 아무래도 동굴벽화 같은 작업. 사실 벽화라는 것 자체가 오래된 주제잖아요. 그걸 다시 현재로 가지고 오면서도, 지금의 서울을 그린다는 것이 미래 시점에서 지금을 어떻게 아카이빙하느냐 하는 문제로 연결할 수 있을 것 같아 흥미롭게 봤어요. 현재를 벽화로 만들면 이걸 미래의 사람들은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정유진 작가 외에 나머지 한 분을 한국 작가로 할지 일본 작가로 할지 고민했고, 시청각이라는 공간, 소위 ‘폐허’에서 작품이 잘 부각되는 작가를 떠올렸어요. 그런 작가가 스기모토 작가 외에는 아예 떠오르지 않았어요. ‘스기모토 작가가 오케이를 안 해주면 어떻게 하지?’ 그런 심정이었어요. 예산 문제도 있었고···규모가 큰 작업은 아예 못 가지고 오니까 걱정을 했어요. 다행히 스기모토 상 작업은 사이즈가 캐리어로 들고 올 수 있는 정도니까요. 스기모토 켄스케의 작업이 한국에 소개될 때 단순히 애니메이션 이미지를 사용한 작업, 오타쿠 작업 이런 거로만 소비되지 않았으면 하는 의도에 시청각 공간이 잘 맞을 거 같았어요.

전시의 아티스트 토크에서 많은 생각을 했어요. 사물은 두 작가가 만든 풍경 같지 않게 스무스하게 이어지는데, 언어로 이야기하니 예상치 못한 벽이 드러나는 걸 봤어요. 이를테면 일본에서 담론이 번역되어 한국에 건너왔고, 이를 대학교에서 강의용 자료로 쓰고 있다고 해도, 일본 작가들이 이를 알 수는 없잖아요. 예를 들면 토크에서 스기모토 작가의 작품에서 애니메이션 캐릭터 사용에 대해 질문했는데, 갑자기 ‘캐릭터의 신체성’에 대한 담론을 처음부터 꺼내오는 걸 볼 때에, 두 도시가 서로를 너무 모른단 생각을 했어요. 전시의 풍경과는 달리, 미묘하게 같은 장소나 시간대에 있는게 아니라는 느낌? 갑자기 국적을 느껴 버리는 거에요.

콘노 유키 : 음음. 맞아요. 아무래도 이번 전시는 스기모토 작가의 귀국 일정이 바쁘기도 했고, 다른 기회가 있으면 충분히 살펴봐야 되는 부분이지 않을까 싶어요. 자리가 더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해외에서 아시아 작가끼리 만나서 대화를 하면 뭔가 통하는 구석이 있는데, 사실 그 안쪽으로 들어가면 굉장히 어렵죠. 역사적으로 얽힌 부분이 상당하고.

콘노 유키 : 그래도 시차를 두고서라도, 이야기가 오고 가는 게 있었으면 좋다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제가 통역이나 번역을 해서 그런지···뭔가 서로 다른 나라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 틈새를 만든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런 부분에서 기획이 들어서게 되고요. 이런 역할이 저한테는 되게 적당한 거 같고···뭔가 교류전을 통해서는 이해가 잘 안 되는 것이 있다는 전제를 깔면서, 그 부분에서 숨이 트일 수 있는 틈새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요새 좀 들었어요.

양쪽을 바라볼 수 있는 매개자로.

콘노 유키 : 근데 사실 거기에 서 있는 건 힘든 일이기도 해요. 소속감이 모호해지는 기분이랄까요. 저는 12년 동안 서울에서 살고 있는데 ‘일본에서 지금 어떤 게 재미있니’ 이런 얘기를 계속 듣게 된달까. 그럴 땐 ‘아···. 나는 역시 일본사람이었다’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근데 막상 일본에 가면 제가 한국 사람처럼 보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일본 라멘 집에 갔는데 ‘웰컴’ 하고 인사받고, 영어 메뉴 받고. ‘웨어 아 유 프롬?’ 하면 전 그냥 일본어로 대답을 하고. 양면적인 거 같아요. 고향이 두 개 생긴 거는 소속의 가능성인 동시에, 어쨌든 둘 다 소유할 수 없으니까 선택의 문제잖아요. 그러니까 가장 당혹스러울 때는 역시 뭐 비자 문제 관련해서예요. 이제 졸업하고 비자를 어떻게 받아야 할지. 한국어 능력 시험도 봐야 하고. 그게 2년마다 효력이 상실돼요.

시청각에서 기획을 의뢰를 했을 만큼, 유키 씨가 움직이려는 속도보다 주변에서 본인에게  바라는 속도가 더 빠르기도 한 거 같아요. 동시에 이게 정확히 어떤 결실을 맺을 지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죠. 스스로 목표를 단단하게 잡는게 중요하겠네요.

콘노 유키 : 소규모의 번역이나 통역, 이런 것부터 시작해서 기획이나 큰 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 비평가, 기획자 이야길 하셨지만, 뭔가 제 생각에는 저는 그런 부분에 아직 도달하지 못 했다는 생각도 들어요. 스스로 비평가라고 하기는 뭔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기획도 딱 한 번 했는데 기획자라고 하는 것도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어떻게 보면, 콘노 유키로서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콘노 유키 자체가 어떤 정체성이라고 할까요. 일전에 자기소개를 어떻게 쓸지 고민하다가, ‘나는 서울에서 서울과 일본을 왔다 갔다 하는 일본인이고, 일본인이라기에는 너무 오랫동안 서울에 있고, 헤르미온느입니다’ 이런 식으로 정리를 끝낸 거 같아요.

헤르미온느? 시간을 되돌리는 시계, 그 얘기 하는 거죠?

콘노 유키 : 네. 처음엔 헤르미온느를 몰랐어요. 와우산 타이핑 클럽 사람들이 저보고 헤르미온느, 헤르미온느 하는데. 저는 무슨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어떤 시간을 상징하는 신 그런 건가 했어요. 뒤늦게 안 거죠. ‘하마이오니’라는걸.

2018년 11월에 나눈 대화를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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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방과후

그런데, 현대음악에 취미가 있으시다고요.

현대음악을 이해하고 싶어서 교보문고에서 음반을 왕창 사서 그냥 많이 들었어요. 요새는 많이 신경을 못 쓰고 있기도 해요, 그래도 계속 듣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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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노 유키

★ 콘노 유키의 추천 트랙 ★

1. Philip Glass ‹In the Upper Room›(1986)

필립 글래스는 ‹해변의 아인슈타인›(1976)이 유명하지만 저는 ‹In the Upper Room›을 추천합니다. 트와일러 타프(Twyla Tharp)의 현대무용 작품을 위해 만든 음악입니다. 특히 OMM(Orange Mountain Music, 필립 글래스의 레이블)에서 나온 버전을 좋아하는데, SONY 버전은 전자 오르간의 소리가 겹겹 쌓인 레이어가 어우러지기 보단 타악기 소리처럼 크게 들리기 때문에, OMM 버전을 좋아합니다.

2. Michael Nyman ‹안네의 일기›(1995)

마이클 니만은 영화 수록곡 ‹The Piano›(1993)‹ZOO›(1985) 수록곡으로 유명합니다. 이외에 ‹MGV›(1991)나 ‹The Kiss›(1985)도 좋아합니다. 그 중 일본에서 만든 영화 ‹안네의 일기(The Diary of Anne Frank)› 수록곡을 추천합니다. 필립 글래스가 필립 글래스 앙상블(PG Ensemble)에 전자 오르간을 포함했다면, 마이클 니만은 색소폰 3파트+베이스 기타가 포함됩니다. 기계적인 느낌보다는 감미로운 멜로디가 두드러집니다. 영화를 안 보고 듣는 재미도 있고, 마지막에 나오는 ‹WHY›가 강력하면서도 좋습니다.

3. Frederic Rzewski ‹North American Ballads›(1978–79)

프레드릭 제프스키는 한 시간에 걸친 곡 ‹36 Variations on “The People United Will Never Be Defeated!”›(1975)로 주로 알려진 작곡가입니다. 피아노 연주자이기도 해서 ‹36 Variations›도 그렇고 ‹North American Ballads›(1978–79) 또한 상당히 즉흥적이며 고도의 연주 테크닉이 필요한 작품입니다. 총 4곡으로 이뤄져 있고, 3번째 ‹Down by the Riverside›의 카덴차 부분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전반적으로 민요의 멜로디를 바탕으로 변형하며, 미국의 소설가 및 시인을 주제로 다룬 4곡으로 구성된 찰스 아이브스(Charles Ives)의 ‹Piano Sonata No. 2 “Concord, Mass., 1840-1860″›(1920)와 비교 해 들어 보셔도 재미있습니다.

4. William Bolcom ‹Three Ghost Rags›(1970-1971)

현대음악에 관심이 없던 중3 때 스콧 조플린(Scott Joplin)의 Ragtime이나 조지 거쉰(George Gershwin)과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하며 신기한 기분으로 들은 작품입니다. 이 답은 여전히 안 풀렸습니다. 윌리엄 볼컴의 다른 작품 ‹Twelve New Etudes›(1977/1986)의 전위적 분위기완 달리 비교적 듣기 쉽습니다. 총 3곡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5. Steve Reich ‹4 Organs›(1970)

대표작 ‹Piano Phase›(1967)부터 시작해서 ‹Drumming›(1971)이나 ‹City Life›(1995), ‹Electric Counter Point›(1997), ‹Different Trains›(1988), 그리고 비교적 최근의 ‹Radio Rewrite›(2012)까지, 그 외에도 많지만 하나를 꼽으라면 전자 오르간을 타악기처럼 다루는 ‹4 Organs›입니다. 건반악기가 지니는 이중적 성격, 현악기인지 타악기인지 모호한 성격 중 후자에 집중시킨 작품입니다. 헨리 코웰(Henry Cowell)처럼 기법적으로 악기를 다루는 방법, 혹은 피아노 내부에 있는 현을 조작한 존케이지(John Cage)의 ‹Interlude and Sonatas for Prepared Piano›(1948)와 달리, 소리가 나는 대로 나는 특성을 멜로디가 아니라 음의 단위에서 반복시키는 부분이 매력적입니다.